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게임, 인 아더 워터스
인 아더 워터스는 사라진 파트너를 찾다가 외계 생명을 발견하는 우주생물학자 엘러리 바스의 이야기입니다.
엘러리가 미나이 노무라의 부름을 받고 글리스 677Cc 행성으로 소환될 때, 버려진 기지에 도착하자마자, 오작동하는 잠수복과 자신을 안내하는 이상한 AI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비밀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은 바로 그 AI입니다.
더 깊이 잠수하고 수중 외계 환경을 탐험할 때 엘러리를 안내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세요. 이 행성의 독특한 생명과 어두운 역사는 당신이 밝혀내야 할 숙제이고 당신과 엘러리 사이의 유대감은 곧 알게 되는 비밀로 시험을 받을 것입니다. 이 변화하는 이야기를 통해, 인 아더 워터스에서는 ""자연""과 ""인공""의 생명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극단적인 환경 파괴의 시대에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사합니다. 생명이 계속되려면, 바뀌어야 합니다.
-인 아더 워터스 상점 페이지 설명 中
미지의 외계 행성을 탐험하는 게임이라니, 설명만 보면 굉장히 흥미진진할 것 같은 게임이다. 기상천외한 것들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겠으나, 본작은 어떤 화려한 그래픽이나 사운드와는 거리가 먼 미니멀리즘적인 작품이다. 플레이어가 반나절 가량 플레이하면서 보게 되는 것은 점, 선, 면으로 구성된 UI와 필드 뿐. 음악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절제되어 있지만(글을 쓰는 와중에도 음악이 있었는지 헷갈림), 간간히 들려오는 소리들은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일조한다.
외딴 행성에 홀로 떨어진 플레이어는 행성을 탐사하면서, 옛 파트너의 행적을 찾게 되고, 점차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의 전말에 접근하게 된다. 게임 초반의 나는 잘만들어진 해양생물 교과서를 읽는 느낌으로 플레이했었지만, 탐험을 하면 할수록 해피 어드벤처 라이프와의 거리는 멀어지는 것을 느꼈으며,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나는 해양 스릴러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해저를 뒤지기 시작해서, 5~6시간 후면 엔딩을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듣게 되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는 흥미로울 수도 있고, 누구는 고전SF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시나리오에 대한 감상이 아니다. 내러티브가 아닌 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말했듯이 개발자는 점, 선, 면, 색채, 소리를 통해서 미지의 세계를 구현했는데, 긴장감이 고조되는 국면에서는 빨강색을 활용하고, 긴장감이 완화되는 부분에서 노란색이나 초록색을 채용하는 등 색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신선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누군가 나에게 이 게임이 재밌냐고 묻는다면, 빈말로라도 재밌다는 말은 못할 것 같다.
인 아더 워터스는 분위기도 좋고, 설정도 좋고, 독특하게 세련된 부분도 있고, 시나리오의 기승전결도 확실하다. 그런데 이 게임을 플레이 하는 내내 든 생각은 '시나리오(게임 시나리오 창작이 아니라 본작의 시나리오) 자체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재밌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라는 것이다.
본작의 플레이를 요약하면 위 스샷처럼 점선면으로 이뤄진 필드의 점을 선으로 잇는 게임이다. 그 동안 플레이어가 관리해야 하는 것은 기체의 전력과 산소 농도, 샘플통에 넣는 샘플과 용량뿐. 여기에는 고도의 판단이나 컨트롤이 개입될 여지가 없어서, 플레이 내내 하는 일이라곤 단순한 반복 작업(클릭질) 뿐이다.
클릭 몇번, 가끔 텍스트 읽고, 엘러리의 독백을 듣고, 클릭 몇번..이하 반복.
물론 갈림길이나 막다른 길이 자주 나오다보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엘러리의 대사를 다 들을 생각이라면 모든 필드를 다 후벼파야겠지만..개인적으로 나는 이 탐험이라는 탈을 뒤집어쓴 클릭질에서 어떠한 재미도 느낄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일련의 과정들이 단순 노가다일 뿐이며, 엘러리의 대사를 통해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소설적인 재미 외에 컨트롤하면서 느낄 수 있는 재미는 없다는 뜻이다(모든 대사들을 다 찾지 않아도 메인 시나리오를 이해하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탐험 부분을 좀 더 풀어보면 이야기가 좀 더 심각해진다.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강한 UI에 맞춰서 세모를 눌러 필드를 스캔,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서 클릭, 동기화 버튼을 클릭, 그리고 바로 위의 점을 눌러서 탐사정을 이동시키는 것 뿐이다.
물론 이동하는 과정에서 탐사정의 자원이 소모되며, 각종 제약을 마주하기 때문에 채취한 샘플들을 필드에 사용하거나, 샘플을 탐사정에 투입해야 하는 식으로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이 부분을 생존 게임적인 재미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사고가 필요 없는 단순 반복 작업'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개발자는 일련의 반복 작업에 약간씩의 변화를 주긴 하지만, 탐사정을 한번 이동시키는데 세번의 클릭을 요구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런 이동 과정에서 대체 어떤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길을 걸을 때 주위 360도를 돌려본 후, 목적지를 향해 눈을 깜빡거리면서 동시에 손가락질을 하고, 해당 방향으로 팔을 겨눈 뒤에야만 한걸음을 뗄 수 있다? 인 아더 워터스의 이동 과정은 플레이어를 강박증에 걸리게 만들 정도로 지독하다.
개인적으로 재미는 없었지만, 인 아더 워터스의 점선면을 통한 표현 방식, 세계관 설정, 분위기, 사운드는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남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엄청나게 애매하다고 느껴서, 시나리오에 관심이 가거나, 인디 게임을 직접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면 플레이를 말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