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파스 앤 셀레네 클리어 후기
이번 가을 세일에 구매해서 후딱 클리어한 팜파스 앤 셀레네 : 더 메이즈 오브 데몬
클리어 전까지 몰랐던 사실이지만 본작은 마성전설2편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마성전설 2편이 있었다고!? 내가 아는 마성전설은 미칠 정도로 신나는 미디음을 자랑하는 1편 뿐인데?
내가 기억하는 마성전설은 이거라서, 메트로배니아 스타일로 나온 2편은 여태 그 존재 자체를 몰랐었다.
여튼 팜파스 앤 셀레네는 마성전설 2편의 오마쥬라고 하는데, 플탐은 과하게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맵 탐험하고 아이템 파밍만 해도 깔끔하게 끝나는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물론 메트로배니아 장르의 플탐에 대해 계엄령을 내리려는 플탐 대통령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마성전설2편의 오마쥬답게 팜파스 앤 셀레네의 외견은(UI나 그래픽) 16bit풍이다.
개인적으로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런 스타일은 잠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이미 하나의 뉴 레트로로 굳어졌기 때문에 부차적인 설명은 불필요할 것이다.
게임 내적으로 봤을 때는, 메트로배니아를 즐기는 게이머들이 기대하는 것들이 매우 충실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기존의 메트로배니아 문법 그대로.
탐험을 한다, 길이 읎다, 새로운 능력 해금을 한다, 새로운 지역을 간다..반복.
동장르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약간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특정 구간에서 특정 아이템을 요구하는 상황이 매우 빈번하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크게 와닿지 않지만, 게임 초중반부만 되어도 살짝 답답할 때가 있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특정 아이템들을 파밍해야 게임 진행이 가능한데, 앞으로 갈 구역에 대한 힌트나 필수 아이템이 무엇인지에 대한 힌트가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에 정처없이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사의 전작인 언에픽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었는데, 그때는 대부분의 경우 어째저째 진행이 됐었지만 팜파스 앤 셀레네에서는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은 좀 아쉽게 느껴진다.
맵이 넓고, 다양한 아이템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일자 진행에, 능력을 해금함으로써 플레이어가 강해진다는 느낌은 매우 약하다. 파밍을 하고 팜파스와 셀레네의 성장을 음미하기보다는 보스 던전과 보스 파이트에 아이템이 종속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후반부 소코반 느낌의 퍼즐을 푸는 구간이 있는데 이걸 깨기 위해서는 무조건 아레스의 검이 필요하다.
그런데 게임 내에서 아레스의 검의 기능이 무엇인지, 어디에 필요한지 알 방법이 없기 때문에, 따로 검색을 하거나 그때 그때 남아있는 퀘스트나 안가본 구역을 다 뒤지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막상 아레스의 검을 얻어보면 공격력이 약간 쎄고, 저 돌덩어리를 움직일 수 있는게 끝인데다가, 저 구간 이후로는 저런 식의 퍼즐을 풀 일이 없다보니 두번째 특징은 아예 버려지게 되는 것이다.
어느 시점 이후로는 전부 이런식으로 설계되어 있다보니, 기껏 해금한 스킬 or 아이템이 일회용 열쇠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지속적으로 쓰는 스킬들도 많지만...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팜파스와 셀레네는 꽤 잘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저마다 다른 기믹이 적용된 보스 던전들이나 레벨 디자인에서 제작진의 고뇌를 느낄 수 있고, 마찬가지로 각각의 보스들 또한 특징이 또렷해서 꽤 재밌게 즐길 수 있다.
저마다 기믹이 다른 던전과 마찬가지로 보스들은 각각 다른 스킬과 컨트롤을 요구한다. 게임 극초반에는 보스들의 디자인이 고전적이라 단순한 플레이를 요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으나, 실제 보스 파이트는 보기 보다는 어려운 편이다.
당장 스샷의 피톤만 하더라도 그냥 뱀새끼가 고개 내밀고 왔다 갔다 하면서 물어 뜯는게 끝이지만, 나름의 패턴과 변화가 있어서 공략하는 맛이 있다.
대부분의 보스들 패턴은 한줄요약이 가능하지만 플레이어에게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마냥 단순하지 않다.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잡몹들도 그렇고 보스들도 그렇지만, 이 게임은 적들이 플레이어 인풋을 인식한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내 경우에는 인풋에 반응해서 공격한다는 것 자체가 비겁하게 느껴져서(...) 좀 짜증이 날 때가 있었다. 플레이어의 히트박스가 꽤 크고, 인풋에 반응하는 적들의 공격에 어쩔 수 없이 맞게되거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종종 나온다.
스샷의 모악스도 개멍청하게 생긴 디자인에 패턴도 돌 뱉는게 끝인 놈이지만 돌의 발사 속도나 각도가 플레이어 위치에 따라 달라지다보니, 생각보다 정밀한 컨트롤과 빠른 판단을 필요로 한다.
후반부 발암 구간
스샷의 에어두부가 뇌파를 발산하고 있을 때는 플레이어의 인풋이 역방향으로 작용되는데, 특정한 패턴이 있는게 아니라서(순식간에 뇌파를 껐다 켰다 함) 조작이 상당히 피곤해진다. 입력 방향과 실제 움직이는 방향이 반대인게 끝이라면 크게 어려울 게 없지만 에어두부가 발사하는 공기방울을 맞으면 소량의 체력 피해를 입고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가다보니, 몇번 실패하다보면 스트레스가 급격하게 차오를 수 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어떤 게임이든지 조작감이 더럽거나 UI가 지저분하면 플레이를 기피하는 성향이 있어서, 이 구간만큼은 수용이 안될 정도로 짜증이 났다(...).
반대로 뇌를 비우고 두들겨 팰 수 있는 보스도 있는데, 위의 크라켄이 그런 유형에 속한다.
팜파스와 셀레네는 몇가지 단점들이 있긴 하지만, 간만에 재밌게 즐긴 메트로배니아였다.
단순하게 올드 스쿨 메트로배니아로 치부하기에는 던전의 기믹, 보스 파이트의 완성도가 훌륭해서 현대의 게이머(?)들에게도 충분히 먹힐만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그래픽과 bgm, 사운드가 16bit 풍미일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