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키 아카네, 세상 끝의 살인
가까운 시일에 세상이 대충 망하는게 확정된다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모르긴 몰라도 자기가 언제 죽는지 몰랐던 때보다는 하루하루가 아까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간 못봤던 친구들을 좀 보고 난 뒤에는 대충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운전면허를 딴다는 선택지를 고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포칼립스물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은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 대충 망한 세상에서 운전면허를 딴다?
....세상 끝의 살인은 그런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는 약간 정신나간 여자들이 나오는 작품이다. 초거대 운석이 떨어진다는데 운전면허를 따려는 대학생, 그런 약간 맛이 간 사람을 가르치는 학원강사, 대체 뭐하러 이런 짓을?
여성의 죽음을 결정지은 것은 몸통에 있는 수많은 자상이었다.
-중략-
범인은 누구인가. 교습차량 트렁크에 어떻게 사체를 넣었을까. 잇달아 의문이 떠올랐다. 머릿속을 채운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는, 범인이 존재한다면, 그는 왜 여성을 죽였을까, 라는 것이었다.
원한 때문일까? ㅡ이제 곧 다 죽을 텐데?
아니면 금전 갈등? ㅡ이제 곧 다 죽을 텐데?
그것도 아니면 치정 갈등? ㅡ이제 곧 다 죽을 텐데?
두 달 남짓만 기다리면 다 죽을 텐데, 왜 지금 죽였을까.
이 콤비(?)는 도로주행연습 중 한 여성의 사체를 발견하게 되고, 경찰로부터 권한을 대행받아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그 이후로 이야기는 쉴 새 없이 흘러가는데, 그냥 거두절미하고 재밌다. 재밌어서 계속 읽게 된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중에서 기억나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인데, 구매 전에는 본작도 그런 사회적 문제를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완전히 틀리진 않았지만, 이 소설은 추리, 스릴러의 맛이 없진 않지만 휴머니즘이 가미된 로드 무비에 가까웠다.
어쨌거나 간만에 페이지를 후루룩 넘겼는데, 소재부터 시작해서 다수에게 사랑받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 읽고 보니 이걸 98년생이 23살에 완성시킨 작품이라고?
...하...그런 좆같은(천재적인) 재능이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