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만화

토요다 테츠야, 언더커런트 리뷰

mad wand 2020. 11. 1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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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만갤 불법 번역으로 토요다 테츠야의 단편을 몇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싱겁게 끝나는 작품이 많아서, '일본은 만화시장이 크니까 이런것도 출판이 되는구나' 라는 감상정도에 그쳤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 최근에 미스터 보쟁글스 정식불법번역본이 제 취향이라 몇번씩 다시 읽어봤는데, 때마침 얼마 후에 언더커런트가 증쇄됐습니다. 곧바로 커피시간과 언더커런트를 구매해보니 예전에 봤던 단편 몇개가 커피시간에 들어가있더군요. 개인적으론 커피시간은 짬내서 커피 한잔 마시고 설거지 하는 느낌(???)이었고, 언더커런트는 작품 내에 담겨있는 감성이나 주제의식이 묵직해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하 줄거리가 포함된 감상

 

 

 

언더커런트는 크게 두가지의 사건-카나에가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 사건, 유년기의 친구인 사나에 유괴와 남편의 실종-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카나에는 남편과 함께 목욕탕을 운영하지만, 어느날 남편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립니다. 그녀는 겉으로는 잘지내는 것 같지만, 기저에서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는 커져갑니다. 유년기때 겪은 사나에의 실종사건은 카나에에게 지울 수 없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그에 더해 실종된 남편은 또 다른 상처를 남기게 되고, 카나에는 더욱 자책하면서 괴로워합니다. 그렇다고 평생 슬퍼할 수는 없기에, 카나에는 마을조합에 요청해 사람을 구하게 되고, 그렇게 "호리"라는 남자를 목욕탕의 종업원으로 고용하게 됩니다. 

 

 

 

"2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앞으로 젊은 부부가 힘을 모아 잘해내가자고 한창 의욕이 넘칠 때였지. 

카나에가 여기를 물려받겠다고 했을 때 사토루 씨는 회사까지 그만두고 데릴사위로 들어왔는걸

옆에서 보기만 해도 둘이 얼마나 사이가 좋았는데 나는 아직도 믿어지질 않아."

 

주변인들은 의아해하지만 당사자인 카나에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주변의 평판도 그렇고, 자신이 생각해봐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의 행적이 더 이해가 안되는 거죠. 어느 날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카페에서 잡담을 하며 자연스럽게 가정사까지 화제가 옮겨갑니다.

 

 

 

"이미 이런저런 가능성을 모두 따져봤지만 역시 본인 의지로 나갔다고밖에 생각이 안돼

따로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내가 싫어졌을지도 모르고, 목욕탕이 싫어졌을지도 몰라." 

 

"사라지기 전에 전혀 아무런 낌새도 없었어?"

 

"응 내가 느끼기엔...그래. 그 뒤로 쭉 그 사람과 함께 있던 순간을 떠올리려고 해도 왠지 자꾸만 머릿 속이 흐릿해져서...충격은 충격인데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뭐랄까, 현실감이 없어" 

 

"내가 아는 사토루 씨와 증발이란 단어는 전혀 매치가 안되는데. 인상좋고 다른 사람 잘 챙기고 책임감도 있고"

 

"하루에 몇번씩 생각해. 내가 잘못한 건가, 나 때문에 뭔가 힘을 겪었나. 나랑 결혼한게 잘못이었나

부모가 없는 사람끼리라 서로의 마음을 잘 안다는 둥, 그런 말을 하곤 했거든. 그런데 있잖아 제일 괴로운게 뭐냐면..

어쩌면 사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게 아무것도 없었는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제일 괴로워"

 

같이 지내온 시간이 길더라도, 한 사람을 안다는건 어렵습니다. 남편이 사라진 이유를 파악해보려해도 감정의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 상황, 카나에가 사토루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안한건지. 개노답 상태의 카나에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사설탐정을 고용하고, 그에게 사토루에 관해 이야기를 해나갑니다.

 

 

 

"저기 아까부터 쭉 얘기를 들으며 생각을 해봤지만, 뭔가 딱 떠오르지를 않네요. 남편 분인 사토루 씨의 개성이랄까 그런 게 말이죠. 인상이 좋다, 다른 사람을 잘 챙겨준다, 책임감이 있다. 그런 말들은 그 사람의 진짜 모습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본래 지니고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알리바이 조작에 지나지 않죠. 얘기를 들을수록 제게는 남편 분이 주위 사람들에게 자기 본질을 보이지 않으려는 은폐 작업을 계속했다는 이미지밖에 떠오르지 않아요."

 

"무척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네요. 야마자키 씨는 그 사람을 만난 적도 없잖아요.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토록 쉽게 단정을..."

 

"네, 만난적도 없죠. 그럼 4년의 교제와 4년의 결혼생활을 하신 부인께서는 남편 분에 대해 잘 아시나요?"

 

"물론..전부 알지는 못하겠죠. 하지만 적어도 당신보다는 많이 알아요"

 

"흐음...그럼 하나만 묻겠는데, 누군가를 안다는게 뭡니까?"

 

야마자키는 카나에에게 질문을 던지지만, 그녀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야 누구나 조금만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니 적절한 대답이 되지 못합니다. 최소한 눈으로만 볼 수 없는 성격, 성향, 취향, 호오 등을 알아야할텐데, 그걸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8년의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그런걸 모르기도 힘든데, 그것과는 별개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토루는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인간은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기자신의 감정에 기반해 움직입니다. 카나에는 사토루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그런 행동의 원인, 그의 감정을 몰랐기에 말문이 막힙니다. 

 

 

 

"어쩌면 남편 분은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다 털어놓고 이해받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말주변도 없고 제대로 전할 자신도 없어 계속 그런 무력감에 빠져 지내다 전부 내던져버리고 싶어져서 뛰쳐나갔다... 뭐, 이것도 전부 가정이지만요. 결국 알지 못하는걸 아무리 이것저것 생각해봤자 소용이 없어요. 모르는 것은 모르고 아는 것은 조만간 알게 되겠죠."

 

"죄송해요. 그리고 정말 고마웠어요."

 

"별말씀을요. 부인 부인은 어떠세요? 남편 분이 부인에 대해 많이 알았나요?"

 

카나에와 사토루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 이 시점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야마자키는 남편의 행방을 찾게되고, 사나에에게 경과를 보고합니다. 

 

 

 

"그 사람이 없어져서 놀라고, 슬프고, 화나고, 상처도 받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만큼 사람이 밉지는 않아요. 용서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물론 '아니오'지만요. 그건 내가 그 사람의 참 모습을 대하지 못했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를 안다고 믿었지만 실제는 아니었죠. 부부로서 충실한 관계를 맺어왔다고 믿었지만 그 역시 아니었어요"

 

"전에 야마자키 씨가 '내게 누군가를 안다는게 뭡니까?' 라고 물었죠?. 그 말 듣고 정말 한동안 멍했어요."

 

...

 

 

 

어느 날 카나에는 심하게 앓게 되고, 그런 카나에를 두고 호리와 요코는 대화를 나눕니다.

 

"사토루씨가 사라진 뒤로 계속 힘들었겠죠. 아니...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인가. 하지만 옛날부터 카나에는 꿋꿋한 성격이라 남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저렇게 약한 면도 있었구나." 

 

"....물론 사장님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부분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주위의 기대나 역할 때문에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내지 않았는지도 몰라요." 

 

"어머? 어째 나보다 호리 씨가 카나에를 더 잘 아는 것 같네." 

 

무심해 보이기만 하던 호리씨는 의외로 세심한 면모를 보입니다. 작중에서 호리와 카나에 사이에서는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데, 대사를 줄줄히 적고 있는 주제에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호리의 정체가 나름 중요한 스포일러라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호리 씨는 왜 가끔식 나를 그렇게 뭔가 그리운 듯한 시선으로 바라봐요?"

 

"그런 적 없습니다. 기분 탓이겠죠."

 

"호리 씨, 이거 하나만 약속해줘요. 우리집에서 나갈 때는 말없이 떠나거나 그러지 말아줘요"

 

(침묵)

 

카나에는 과거의 사건들때문에 자신의 주변인이 사라지는걸 두려워합니다. 사나에, 사토루 그리고 호리. 

 

 

 

야마자키의 안내로 사나에는 남편과 만나게 되고, 그간 미뤄왔던 이야기를 합니다. 왜 사라진건지, 같이 지내왔던 기간동안 느꼈던 감정들, 속에 숨겨놓고 말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하지만 사람을 믿게 만드는건 의외로 간단하지. 나는 그 사람이 무엇을 믿고 싶어하는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손에 잡힐 듯이 보여. 그리고 그걸 줄 수도 있고. 사람은 진실보다 마음 편한 거짓말을 더 좋아해. 진실 따위는 아무도 알고 싶어하지 않아. 그냥 속은 채로 살고 싶어하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와 결혼한 것도 그저 회사에서 한 거짓말을 얼버무리기 위해서였어?"

 

...

 

"내게 했던 말이나 둘이 나눴던 대화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거짓말이었어?"

 

(침묵)

 

 

 

 

"내가 당신의 진짜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몰라. 어차피 하는 내 진짜 모습도 잘 모르는걸."

 

"너는 거짓말쟁이가 아냐. 너는 그렇게 약한 사람이 아냐."

 

"아니. 나는 강하지 않아. 약한 인간이야. 우리는 어쩌면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래"

 

카나에와 사토루는 여태까지 애써 무시했거나, 감췄거나, 자신도 몰랐던 감정을 쏟아내며 마음을 정리합니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사부 영감님과 호리를 중심으로 또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술했던 스포일러 파트의 대사들.

 

"서로 괴로움을 쏟아내면 돼! 상처받으면 울고, 그걸 또 얘기하면 되는 거야!"

 

...

 

"그렇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괴로움은 속에 간직해두면 몸을 상하게 할 뿐이야."

 

"제가 카나에 씨에게 해줄 수 있는 아무것도 없어요. 저는 여기 오지 말았어야 해요."

 

호리는 사부 영감님에게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게 되고, 그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카나에의 곁을 떠나기로 마음먹습니다. 카나에는 사토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둘의 이야기는 한박자 먼저 끝납니다. 그러면 카나에와 호리는? 호리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가 싶었지만, 버스가 떠난 후에 다시 목욕탕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작품은 끝나게 됩니다. 단순히 카나에와의 약속-말없이 나가지 말기-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깁니다. 

 

 

 

...

 

 

언터커런트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앞서 봤듯이 카나에와 사토루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되고,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나눕니다. 사토루가 하는 말이 진실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의 관계는 이미 끝났고, 카나에의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과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했던 거니까요. 사토루가 그런 행동을 한 원인, 그 속에 흐르던 감정을 알고 싶었던거죠. 그(사토루) 사람을 안다는 건 마음 속의 감정까지 안다는 것일텐데, 카나에 말마따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감정)이 뭔지 모르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겁니다.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추억을 만들어나가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을까요? 작가는 그에 대해 카나에와 야마자키를 빌어 부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카나에와 사토루는 겉으로는 잘맞고 행복한 것 같았지만, 둘의 마음 속에 흐르던 감정(언더커런트)들은 둘다 알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알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게 맞는 것 같지만

 

감정은 사람의 행동기반인데, 그 폭은 매우 넓고 깊습니다. 애써 무시하거나, 알아채지 못하는 감정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 암류 또한 커져만 갑니다. 작품 속 카나에나 사토루, 호리처럼 속으로 앓는 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힘든 것 같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람간의 교류(交流)=감정의 교환도 물론 중요하지만, 기저에 흐르는 감정을 방치한다면 관계를 그르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싶네요.

 

 

 

 

p.s

단편 소설을 만화로 옮긴다면 이런 느낌일것같은 만화. 작가의 오너캐같은 야마자키 탐정이 등장부터 다 꿰뚫어보듯이 말을 하고, 그 말들이 다 맞아떨어지는건 너무 내러티브를 날먹하려는 느낌이 났다. -야마자키가 전지적 시점에서 서술을 하고, 그 서술이 맞아떨어지는 것 때문에 문제점을 짚는게 너무 편해짐. 그리고 작중 등장하는 여캐가 하나같이 남자처럼 생긴 게 좀 거슬린다. 성인여자는 여자같은 느낌이라도 나는데, 커피시간도 그렇고 여자애는 머리 조금 기른 남자아이 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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