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리뷰

토먼트 : 타이드 오브 누메네라

mad wand 2018. 7. 1. 22:02

H2 인터렉티브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를 보다 보면 종종 만장도 안 팔릴 것 같은 게임을 한글화 해주기도 한다. 
일설로는 개발사가 구작까지 덩달아 번역 발매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는 게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 회사가 작년에는 토먼트 : 타이드 오브 누메네라라는 게임을 한글화 발매 해줬다. 
플레인스케이프 : 토먼트의 후속작. 몇십년 만에 나온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토먼트…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그때 플레인스케이프를 구입했던 한국사람이 2만명도 안 될텐데 그 중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 할 여가시간이 없거나, 스팀에서 게임 모으기 게임이나 하고 있을텐데 한글화라니 만장이나 팔릴까?.’

그리고 예상했다시피 판매량이 처절했던 건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렉트 게임즈는 정가 5만원이 넘는 꼠을 만원짜리 랜덤박스에 넣는 똥꼬쇼를 감행하게 된다. 

랜빡에는 서든 스트라이크4나 스나이퍼 고스트 워리어같은 똥껨도 있었기 때문에 고민을 했었다. 그런데 재수좋게 누메네라를 뽑을 수 있었고, 뽑자마자 플레이를 감행하게 되는데.. 대사가 많다 많다 말은 들었지만 워낙 비인기게임이라서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했었다. 많아 봤자 윗쳐3 게롤트 정도겠거니 했는데, 오산이었다. 박찬호였다.


-전반적인 소개

전지전능한 존재인 변화하는 신, 그리고 그의 자식이자 분신같은 존재인 잔재들, 변화하는 신으로부터 탄생한 최초의 잔재와 주인공인 최후의 잔재까지. 세계관 내에서 묘사하기로는 잔재들은 모두 특수한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성격이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한다. 플레이어=최후의 잔재는 게임을 시작할 때 직업과 성격, 능력치를 설정하게 된다.

직업의 경우 글레이브(전사), 나노(마법사), 잭(양쪽의 특성을 갖는 직업)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으며, 성격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어차피 플레이 하면서 지배적인 타이드(성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게임에선 있어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용어를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가 변화 하는데다가, 엔딩까지 본 입장에선 타이드가 게임에 미치는 영향이 뭐가 있었지? 싶을 정도로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주능력치는 힘, 속력, 지능이 있다. 힘은 공격력과 체력, 저항과 연관된다. 속력의 경우 일반적인 게임에서 민첩같은 능력치이며 전투에선 회피율과 관계가 있다. 지능의 경우 의지력과 관련있다. 각각의 능력치는 전투 뿐만 아니라 대화 선택지에도 영향을 주는데, 힘의 경우 힘을 쓰는 대화선택지와 관련되며(물체를 부수거나 완력행사 등), 속력의 경우 물건을 훔치거나 재빠르게 무언가를 할 때 필요하다. 지능의 경우 말빨과 연관된다. 

이 외에도 시작할 때 고르는 특수능력이나, 직업에 따라서 레벨업 하면서 배우게 되는 특수능력과 집중, 그리고 행동에 부가적으로 소모할 수 있는 역량이라는 능력치가 있다. ㅡ참고사항으로 이 게임은 전투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지능 및 설득쪽의 특수능력 그리고 속도가 중요한 편이다. 


각 능력치들은 "전투"나 "대화"에서 일정한 행동을 할 때마다 소모가 되며 소모된 능력치는 여관과 아이템을 이용해 회복하거나 레벨업시 회복이 된다. 



대화 선택지를 예로 들면 두들겨 패는 선택지에 기본적으로 힘이 6이 필요하다고 가정해보자. 캐릭터의 힘 능력치는 총 8이며, 6이 넘기 때문에 두들겨 패는 선택지가 해금이 된다. 힘을 1 소모하면 8-1=7이 되며, 두들겨 팰 수 있는 확률이 70%(임의의 수치)라고 표시가 된다. 2를 소모할 경우 힘은 6이 남게 되고 확률은 80%가 된다. 여기에 역량을 1 소모할 경우 확률은 100%가 되며 반드시 두들겨 팰 수 있는 식으로 선택지가 열리는 식이다.

대화나 행동 선택지는 기본 능력치를 중심으로 역량과 집중을 통해 성공율을 조절할 수 있다.



*글로는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본작 자체가 특정 용어의 남용이 있으며, 능력이나 용어들이 직관적으로 이해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다 풀어 쓰기엔 한계가 있다.



-세계관

본작은 8개의 우주가 멸망하고 난 뒤 생성된 제 9우주를 배경으로 다룬다.  

변화하는 신은 우주를 떠돌아다니고 있고, 그의 분신인 잔재들은 어딘가에서 폭정을 휘두르고 있거나, 암살자가 되거나, 학자, 건설자, 과학자, 노예 상인등이 되어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최후의 잔재는 비탄이라는 존재에게 쫓기게 되는데, 비탄의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을 파괴하는 존재라고 한다.

플레이어는 이 비탄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여행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인물들과 세계를 여행하게 된다. ㅡ사실 여행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할 수도 있는게, 게임에선 몇개의 마을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몇세대에 걸쳐서 성간비행을 하며 살아가는 집단, 거대한 고래등 위에서 일생을 사는 사람들, 식인을 하는 종교, 이집트를 떠올리게 하는 문명 등. 하나의 세계관 속에서 매우 다양한 집단을 그리고 있다.



"와! 누메네라! 그런데 TRPG로 겁.나.게 (해외에서) 유.명.합.니.다!" 원작의 팬도 있고, 플레인스케이프의 후속작, 이거 엄청난 명작이겠군...싶지만.. 게임의 개발비는 한정 되어있고, 플레이타임도 대체적으로 개발비를 따라간다. 토먼트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방대한 세계관을 살릴려면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야 할텐데, 과연 어떨까? 

청자를 이야기에 몰입시키려면 매력적인 등장인물, 세계관의 생생한 묘사, 흡인력 있는 사건(개연성이 있든, 감동이든 뭐든 간에)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다. 타이드 오브 누메네라의 경우 원작이 있으니까 어느정도는 보증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누메네라, 공부하세요!

토먼트의 경우 세계관은 방대하나, 원작이 있는 탓일까? 제작사의 능력부족일까? 게임은 시종일관 유저들에게 강박적으로 학습을 강요한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우리 게임의 세계관은 어썸해! 네가 이걸 배울 수만 있다면 이야기는 엄청나게 재밌어질거란다 껄껄" 그래서 플레이어는 시작부터 누메네라, 에소페리, 타이드, 사이퍼 등등 알 수 없는 용어들에게 돌아가면서 두들겨 맞게 된다.

개발사가 맛있는 요리를 준비했다고 홍보는 했지만 그 요리를 먹기 위해선 수십가지 음식예법을 체화 시켜야만 먹을 수 있다니, 그냥 5분만에 나오는 햄버거 콜라셋트 먹고 잠이나 자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작사의 광기 어린 세계관 설명에 미쳐버리거나, 환불을 외치게 되겠지만 그걸 참고 게임의 중반부까지 진행하게 된다면, 세계관 설명에 소모된 방대한 양의 텍스트도 다시 읽고 싶어질 것이다.(개인적 경험으론 텍스트의 홍수 때문에, 처음엔 잘 읽히지도 않던 것들이 후반부에 가선 이해가 되면서 앞 부분을 다시 읽고 싶어졌었다) A4지 수백 수천장에 달하는 텍스트를 견딜 수 있다면 그제서야 재밌어 진다는게 엄청난 문제지만 말이다.

사이드퀘스트나 메인퀘스트에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생명의 본질에 대한 물음, 불가지적인 존재에 대한 탐구,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는 세계에서 살인로봇이 로켓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고, 옆 동네로 갔더니 마법으로 사람을 태워 죽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문제는 하나의 게임안에 넣기에는 너무나도 거대한 세계관이라는 것이다. 방대한 세계관을 우겨넣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설명이 필요하지만, 게임의 분량은 한정되어 있다. 세계관 설명에 대한 완급조절에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론 dlc형태든, 파트를 나눠서 발매를 했든 이야기와 전투를 보충해서 발매하는게 나았으리라고 본다. 

타이드 오브 누메네라를 플레이 하면서 항상 시간과 예산이 부족한 니트로 박사님이 떠오르면서 조금 슬펐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더 그럴싸한 걸 만들어 냈을 것 같은데..



- 전투

전투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법한 턴제 전투다. 따라서 전투 시스템 자체에 대한 평가는 최대한 배제하고, 장단점을 말해보도록 하겠다. 

글레이브, 나노, 잭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전투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은 장점이다. 마법을 쓰느냐, 육체를 이용하냐로 갈리며 사이퍼를 소모하면서 싸울 수 있다. ㅡ사이퍼는 소비성 아이템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게임은 멀쩡하게  쓰이는 아이템이랑 단어 대신 있어보이는 사이퍼란 말을 선호한다. 힙스터껨이다. 참고로 사이퍼는 소비성 아이템인 경우도 있지만, 영구적인 것도 있고 전투에 사용하지 않는 것도 있다. 정말 힙스터스럽다

전투 난이도는 쉬운 편이다. 선택지에 따라서 겪게 되는 단 하나의 전투만 제외하면 전부 쉽다.

전투 연출은 특출날 게 없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디비니티처럼 밋밋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 나노의 경우 비교적 화려한 기술을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화면이 찢어진다거나 폴리곤이 화려하게 날뛰는 연출을 기대해선 곤란한다.

아쉬운 것은 파티가 강해졌다 싶을 때쯤 전투가 끝난다는 것이다. 4~5개의 짧은 던전, 10번 미만의 짧은 전투가 전부다. 그나마도 던전의 경우도 말이 좋아 던전이지, 실상 던전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곳은 3개 뿐이며, 나머지는 실제 플레이를 한다면 설마 이걸 던전이라고 말한거였냐? 라고 말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대화가 중요한 게임이라곤 하지만, 레벨업 하면서 해금되는 능력들과 전투분량을 생각하면 의도적으로 전투를 없애버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만렙을 찍는 시기와 비슷하게 전투 파트 또한 끝난다) 



-퀘스트, 선택과 결과

토먼트의 퀘스트 디자인은 근래 플레이 해 본 RPG 중에서도 손꼽히게 잘 된 편이었다.

거의 모든 퀘스트들이 여러가지의 해결방법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퀘스트 보상이나 이야기의 결말도 달라지게 된다. ㅡ텍스트만 의미없이 많았다면 맹비난을 했겠지만, 대화 선택지에 따라서 전개양상 자체가 달라져서 의미없이 길기만 한 텍스트는 아니다. 물론 조금 줄였으면 어땠을까 싶을정도로 모든 npc들이 장광설을 늘어놓긴 하지만 말이다.(퀘스트가 아니더라도 모든 NPC들이 A4용지 한장에서 두장정도의 선택지와 대사량을 자랑한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초반부의 퀘스트 중 닉메테론 퀘스트 같은 경우도, 대화 선택지로만 끝내거나(대략 2,3가지의 평화적인 해결방법이 있었던 것 같다), 닉메테론을 죽여서 끝내는 방법도 있다.(이 경우도 2가지의 해결방법이 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지의 살인사건을 밝히는 퀘스트의 경우 여관에서 몇번 자면서 밍기적 거리다보면 피해자들이 자꾸 발생하고 보상도 조금 달라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 마을을 싸돌아다니면서 모든 대화 선택지를 읽고, 행동능력치를 소모한 후 회복을 위해 텐트에서 여러번 자다보니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가더라.

선택과 결과, 퀘스트 디자인은 잘된 편이나 극후반에 관련되서 아쉬운 점이 있다. 글의 말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고전적인 느낌의 게임진행

요즘 게임들은 퀘스트를 주면 오만가지 방법으로 유저들을 인도해준다. 맵에 마커를 찍어준다거나 목표물이 빛나고 있다거나 기타등등. 위쳐3에선 위쳐센스를 켜놓고 개처럼 흔적을 찾아다닌거나 하는 식으로, 이를 들어 두부 심부름이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다. 

게임 진행에 편의성을 어느정도까지 부여할 것인가는 답이 없는 문제다. 토먼트의 경우는 어떨까? 여전히 텍스트다. 텍스트에 목숨을 건 게임이다. 마커따윈 없다(스페이스를 누르면 필드에서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오브젝트가 보이긴한다). 퀘스트 로그, npc들의 대사, 아이템 설명란을 보다보면 게임진행의 실마리가 보인다. 사실 안봐도 진행에 크게 지장은 없지만, 예전 게임들처럼 알아서 찾고 알아서 진행하는 느낌을 어느정도는 살려놨다고 볼 수 있다.

ㅡ여담이지만 플레이어와 npc, 환경이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을정도로 하드웨어가 발전한다면 모를까(예를 들어 gta에서 댐에 독극물을 풀어서 npc들을 모조리 죽인다거나 빌딩 옥상에 올라가서 돈을 뿌려서 교통을 마비시킨다거나, 축산 농가들을 테러해서 농업관련주식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다양한 게임들이 내세우는 자유도와 상호작용은 허상이라고 본다. 상호작용 같은건 이미 울티마나 울티마 온라인에서 웬만한건 이미 다 나왔기 때문이다ㅡ 



-시대에 뒤떨어지는 연출

별다른 말이 필요 없다. 시네마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컷씬도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캐릭터들이 적당히 움직이면서 텍스트로 설명하는 게임이다 보니 연출이 구린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퀘스트의 다양한 분기, 허나 엔딩은?(스포일러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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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 하는 내내 선택지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를 보면서, 점점 아무 생각없이 1번을 누를 수가 없는 몸으로 변해갔다.

서브퀘스트와 메인퀘스트들 모두 선택지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세이브 로드를 반복하면서 과정을 음미할 수 있었다.


게임의 최후반부에 가서도 플레이어는 선택지를 맞이하게 되는데.. 무엇을 선택하든 그 결과는 큰 차이가 없다.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띈 "최후의 선택"이 결과로 반영되긴 하지만, 에필로그를 보면 그것보다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선택했던 것들이 더 중요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90년 동안 썸씽을 찾아 헤맸지만 썸씽은 처음부터 우리 마음속에 있었던 거로구나 같은 이상한 깨달음을 주는 느낌?

게임 내내 유저에게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지만, 정작 결말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렛잇비~ 느낌으로 끝나버리는건 대단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이브 덕택에 마지막 분기에서 모든 선택지를 다 열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나, 최후의 선택지는 큰 의미가 없다. 후일담과 가장 연관이 큰 것은 동료퀘스트로써 내가 동료들을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대해줬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총평

90년대 서양RPG게임들에게 향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겠으나, 아니라면 비추인 작품. 그게 아니더라도 75%이상 할인가라면 혜자인 게임. 

지나치게 많은 텍스트는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시나리오의 마무리나 분량 조절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p.s
초회차 플레이 타임의 경우 스팀기록으로 28시간이 걸렸습니다.
단, 저같은 경우 선택지가 나올때 세이브를 하고 일부러 이상한 선택지를 고른다거나, 특정선택지로 진행해서 결과를 좀 보다가 로드를 하기도 해서 플레이 타임이 조금은 늘어난 걸 감안해주세요.


빠르게 메인퀘스트만 달린다면 15~20시간정도로 1회차가 끝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