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리뷰

게임, 데스 스트랜딩

mad wand 2021. 9. 11. 00:00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편의상 낮춤말로 작성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경쟁요소는 희박, 어디에서 재미를 느낄 것인가

게임은 목적과 보상이 있어야 한다. 고전 게임들은 하이 스코어를 위한 시스템만 만들어도 게임의 참여자가 생길 수 있지만, 발전한 현대의 게임들은 그에 그치지 않고 경쟁을 통한 승리와 보상을 제공해야 플레이어를 끌어들일 수 있다. 경쟁의 대상은 ai(시스템) 혹은 인간이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특정한 적을 상대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지 않다.

 

데스 스트랜딩에 대한 호평들 중에서 왜 재밌는지 모르겠지만 재밌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본작의 설계를 건방진 수준으로 축약하면, 퀘스트를 받고 목적지로 물건을 배달하는게 끝이다. 말하자면 데스 스트랜딩에는 극단적으로 경쟁이라는 요소가 배제되어 있다는 뜻이다. 플레이어는 배송과정에서 때때로 BT, 뮬이나 예기치 않은 보스전을 겪기도 하지만, 보스전을 제외하면 피할 수 있고(최단경로에 비해서 시간이나 거리가 늘어나긴 하지만), 이들은 배송의 중간단계일 뿐이다. 

 

플레이어의 목적은 매우 명확하다. 배송물을 목적지에 배달해야 하는 것.

데스 스트랜딩은 경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배송의 고단함을 체험하게 만들고, 심리적인 만족감을 보상으로 제공할 뿐이다. 싸워야 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싸워서 이긴다는 개념 자체가 통용되지 않다보니, 세간의 혼란스러운 평가도 이해가 된다.

 

 

 

"좋아요"로 연결되는 세상

본격 라이크신 최면조교물

이런 설계의도는 인게임에서도 거듭 강조된다.

npc들의 샘에 대한 칭송, 인터뷰, 컷씬... 약간 최면조교 당하는 느낌으로 플레이어를 좋아요 중독자로 길들여나간다.

 

 

 

 

 

 

 

플레이어의 사명은 물건을 배송하면서 고립된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시킬 것, 그리고 "좋아요"를 받아서 자부심을 쌓는 것이다. 

살짝 웃긴 부분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결이 테마지만,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홀로그램으로만 등장하고, 실제로 마주치는 장면들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거지만.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 측면에서의 연결은 그렇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서사적인 측면에서 "연결"이라는 테마는 좀 더 매끄럽게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작 내가 "연결"이라는 의미를 체감했던 때는, 배송의 답례로 npc로부터 받았던 "좋아요"가 아니고, 카이랄 링크를 복구했을 나오는 연출도 아니다 연결을 통한 유대감은 그런데서 오는게 아니라 배송 과정에서 불현듯 만나게 되는 실제 유저들의 배려, 흔적들이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설산, 사방에서 숨소리를 내는 bt와 그걸 보고 울어대는 bb와 요동치는 오드라덱, 바닥난 배터리와 스태미너. 게임을 하다가 맞닥뜨릴 수 있는 흔한 상황이다. 철저하게 고립된 환경으로 플레이가 정신적으로 지칠때 쯤, 일면식도 없는 유저들이 내민 기적같은 도움의 손길. 플레이어는 거기서 방금전까지 기진맥진해서 빌빌대던 건 잊어버리고 '아 ㅋㅋ 이게 연결이지' 라고 슬쩍 웃을 수 있는 작품. 그게 바로 데스 스트랜딩이다. (건축물을 열심히 깔아서 유저들과 주고받는 좋아요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하기도 한다. '내 건축물 쩔지?' vs '니 건축물 쩔더라')

 

 

아이슬란드에 영감을 받았다는 게임 속 자연경관들. 산속에 처박혀서 강제로 탐험하게 만드는 "산악인"이나 "베테랑 프레퍼"같은 놈은 개열받게 만들기도 하지만, "산악인"의 말마따나 탐험하는 재미도 뛰어나다

 

 

경쟁 요소가 희박하지만, 뮬을 대상으로 하는 충돌테스트의 타격감은 굉장하다

 

 

 

내러티브는 애매

데스 스트랜딩의 서사는 단점이 많다. 게임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컷신 뿐만 아니라, 메일과 인터뷰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이 텍스트의 양이 상당히 많기도 하거니와, 상당히 많은 양의 배송을 하고 난 후에야 받을 수 있는 메일들도 있다보니, 적당히 카이랄 네트워크만 연결하고 엔딩을 본다면 놓치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엔딩을 보고 난 후에도 계속 플레이할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게임이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당신이 패드를 놓고 있더라도 코지마의 컷씬극장은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주입되는 설정들은, 각주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본문의 흐름을 놓치게 되는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다.

 

5명 뭐냐고요

 

이거 입니다

 

 

 

수직과 수평, 클리프 엉거와 샘 포터 브릿지스

유저가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지칠 수 있는 데스 스트랜딩의 내러티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매즈 미켈슨이 연기한 클리프 엉거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콤바트 베테랑

타르를 뒤집어쓴 클리프 엉거가 등장할 때마다 그 카리스마와 분위기에 압도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실상은 별 거 없이 소비되는 캐릭터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일차적으로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지만,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세상이 미워서 총을 든 50대로 나온다면, 이 게임은 내적으로 완전히 망가져버릴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년전의 트레일러에서 봤던 멋진 수신호는 나올 때마다 멋졌다

사실 그런 걱정이 잘 떠오르지도 않을 정도로, 전장의 클리프는  나올 때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뽐내서 긴장감과 몰입감을 더한다. 클리프와의 전투는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경쟁적인 면이 부각되어있기도 하지만, 장치적으로 볼 때 bb(?)의 회상씬과 대비되어 인물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저녁은 지옥에서 먹는다!

 

 

 

 

클리프와 샘의 관계는 극후반부에 가서 밝혀지는데, 여기서 코지마는 플레이어의 감정선을 자극한다. 

 

사람들간의 단절과 분열을 조장했던 클리프(Cliff)의 삶, 반대로 아들 샘 포터 브릿지스는 아버지와 달리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해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수직선과 수평선은 마침내 이어지게 되고, 샘 포터 브릿지스는 절벽인 클리프를 뛰어넘어 사람들을 연결하는 존재가 된다. 플레이 할 때 내가 가졌던 클리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달리, 시공간을 초월한 부자간의 만남은 감동적이었다.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다시 시점은 과거로 간다. 샘은 인큐베이터 밖으로 나오게 됐지만, 그와 동시에 죽음을 맞이한다. 해변의 아멜리는 샘을 살리는 선택을 하는데, 여기서 배꼽의 상처가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치료되는 묘사가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졌다.

 

 

 

 

 

 

 

 

현재로 돌아가 모든 전말을 알게 된 샘 그리고 bb. bb와의 장면도 인상적이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연결했던 샘인데, UCA와 프래자일과 인연을 끊고 방랑포터(?)로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샘 개인으로서도 작품 메세지로써도 매끄럽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총평

단점이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게임을 재밌게 즐겼던 이유는, 근래에 보기 드문 컨셉과 그에 맞춘 플레이 설계, 그리고 매즈 미켈슨 때문이었다. 약간 개떡같은 조작감과 내러티브가 걸리긴 하지만, 앞서 말했던 이 게임이 재밌는 이유가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는 훌륭한 작품이었다. 

 

 

 

 

 

p.s

뭔가 설명하기 곤란한 부분에서는 그냥 어물쩡 넘어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트럭의 경우 어떻게 해도 실드 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나는 조작감을 선사합니다.

진행 경로의 경사면과 각도가 변하는 부분이 있다거나, 돌부리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트럭이 옆구리를 벌리면서 굴러떨어진다고 봐야..

 

 

경쟁적인 요소가 의도적으로 배제됐다는 것은 단적으로 스트랜드 계약 체결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스트랜드 계약에서 좋아요 많은 순으로 정렬 기능이 없는 것만 봐도, 경쟁적으로 좋아요를 모을 필요는 없다는거니까요. 물론 디렉터즈 컷에서 수정이 된다면? 여태까지 한말은 모조리 헛소리가 됩니다.

 


 

카이랄리움의 발견이 인류에게 기술적인 진보를 제공했다는 것은 묘하게 석유의 발견을 떠올리게 합니다. 해변(타르)를 이용한 카이랄링크와 재생된 국도 밑에 달려 있는 타르 종유석(?)도 그렇고.

 

 

 

"석유는 언제부터 이렇게 인간 생활 깊숙이 자리잡게 된 것일까? 석유는 오랫동안 ‘역청’으로 불리며 액체, 고체 또는 기체로 바뀌어 사람을 현혹시키는 마법의 물질이었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의 마법사는 석유의 분출과 자유로이 발산하는 가스에 의해 미래를 점치기도 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석유의 성분이 탄화수소라는 것은 밝혀졌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확고한 정설이 없다. 그러나 역사 이전 시대의 상황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성서에도 이 불가사의한 물질에 대해 기술되어 있다. “모세가 보니 분명히 떨기나무는 불이 붙어 있었으나, 불타고 있는 것은 없었다.”(출애굽기)

석유가 오래 전부터 이용되어온 사실은 고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서에 보면 역청이 노아의 방주에 방수용으로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수메르인은 이미 아스팔트를 재료로 조각상을 만들었고, 바빌로니아인도 아스팔트를 건축에 접착제로 사용한 기록이 남아 있다. 또 고대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싸는 천에도 아스팔트를 사용했다고 한다. 또한 석유를 상처에 발라 피를 멈추게 하거나 발열을 멈추게 하는 등 ‘만병통치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석유 용도는 대체로 약용, 도장용, 포장용이나 종교적인 의식에 사용되는데 불과하여, 말하자면 호기심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한석유협회 (petroleum.or.kr)

 

대한석유협회

 

www.petroleu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