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테이션1의 성공은 게임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전까지 닌텐도와 함께 했던 스퀘어가 소니측으로 넘어가면서 발매했던 파이날 판타지7의 메가히트는 -지금 보면 웃음이 나오는 그래픽이지만- 게이머들에게 3d 그래픽의 매력을 일깨워줬었습니다. 당시 경쟁기기였던 세가새턴은 킬러타이틀의 부재, 상대적으로 구린 3d연산 능력때문에 열세를면치 못했습니다. 반대로 플레이스테이션은 뛰어난 3d 연산능력, 화려한 그래픽을 앞세워서 수많은 명작들을 쏟아냈으며 게임계의 판세는 완전히 소니쪽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파이날 판타지7의 대성공으로 말미암아 게임계는 '화려한 그래픽, 이벤트CG, 거대자본이 투입된 대작만이 답이다' 라는 풍토가 형성 되었습니다. 반대급부로 상대적으로 저자본이 투입된 게임들이 잘 팔릴 수가 없었죠. 당장 보이는 그래픽이 구리니까요.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구려 보이는 게임들에는 선뜻 손이 가지가 않았고, 그로인해서 개발사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도나 타이틀을 만들기가 어려웠습니다. 인지도가 없는 타이틀은 판매량이 안따라오다보니, 제작사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대작 게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게이머들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오오.. 파판 소환수 그래픽 오오.. 오오.. 코지마 히데오 오오.. 를 했었지만, 차츰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파판 소환수 컷씬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다, 이게 게임이냐 영화냐?, 이럴 거면 영화를 만들어라(콧털 아저씨가 진짜로 파판 더 무비를 만들었다가 스퀘어를 멸망시킬뻔 하기도 했었고, 코지마 히데오는 mgs 이후로 점점 더 영화적인 연출에 집착하기도 했습니다) 등등등.
많은 자본이 투입된 게임들은 시각적으로 화려하긴 했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점점 피곤해지기도 했죠. 노가다를 강요하는 특정 요소들, 과도한 이벤트씬 등으로 인해 플레이의 호흡 자체가 길어졌으니까요. 그러던 중 캡콤은 한가지 실험적인 시도를 하게 됩니다. 바로 엘도라도 게이트(RPG)라는 타이틀을 격월간으로 발매하는 것이었습니다. 대작 게임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게이머들의 요구도 있었고, 제작사 입장에서는 제작비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에 일견 타당해 보이는 시도였었죠.
엘도라도 게이트는 편당 플레이 타임이 짧았습니다. 당시 RPG들은 최소 30시간정도는 해야 엔딩 근처라도 갔었다면, 엘도라도 게이트는 평균 10시간 정도로 한편의 엔딩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동일한 세계관에서 12명의 다른 주인공을 내세우는 컨셉, 2800엔의 저렴한 가격, 짧은 플레이 타임, 격월간 발매, 아마노 요시타카의 일러스트 등도 차별화 요소였습니다.
엘도라도 게이트의 성패는 사실 잘 모릅니다. 개인적인 사정이 겹쳐서 꽤 오랜 기간 동안 게임을 안했었다보니 끝을 몰라요. 엘도라도 게이트의 첫주 판매량이 4800장 정도였다고 하니, 추측으로는 망했을 것 같긴 합니다. 설령 망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실험적인 시도 덕택에 현재의 캡콤이 있는거니까 아예 결실이 없었다고 보긴 힘듭니다. 현재에 와서는 제작비 확보 등의 이유로 당연시 된 얼리억세스, DLC, 분할발매, 분할판매가 남아서 게이머들의 지갑을 털어대고 있으니까요. 이게 다(?) 엘도라도 게이트 정신(?)입니다.
여담으로 엘도라도 게이트의 몇가지 제작비화를 이야기하자면, PD 오카모토 요시키는 애초에 1996년부터 해당 작품을 기획했었다고 합니다. 뭐...1996년이면 사실 새턴으로 게임이 나왔어야 정상인 것 같지만, 엘도라도 게이트는 새턴이 아니라 드림캐스트로 발매됐었죠. 새턴이 망해서 그랬던건지, 캡콤 입장에서 시기상조라고 느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요.
개발 단계에서의 기획은 몇시간만에 끝낼 수 있는 짧은 시나리오를 한 타이틀에 3화 정도 수록하고, 아서왕 전설이나 수호전처럼 에피소드마다의 주인공을 배정하며, 군상극으로 전체의 흐름을 만드는 저가의 연작 RPG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격은 타이틀 당 2800엔으로 박리다매! 였습니다만, 개발 중반쯤부터 '이걸로 큰 돈을 버는 건 무리겠군'라고 생각했다고.(당시 소프트웨어 가격은 5800~6800엔 정도였는데 이걸 절반의 가격에 팔면, 단순하게 생각했을때 판매량은 두배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유통비, 광고비 등이 따로 소모되기도 하고, 소비자들이 사준다는 보장도 없고)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당시 게임 시장의 트렌드는 대작게임이였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2800엔짜리 타이틀을 여러장 살 바에 대작 게임 하나 사는게 이득이라고 판단했을 수도 있구요.
엘도라도 게이트는 캡콤 입장에서도 실험적인 시도였기 때문에, 오카모토 요시키는 개발 단계에서도 여러가지 짓(?)을 시도하게 됩니다. 캡콤의 입사시험에서 아깝게 떨어진 사람들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고, 팀장으로는 실력있는 사람을 앉혀두고 기초부터 공부하도록 했다던가. "급료는 좀 싸지만 스킬을 연마할 수 있고, 솜씨가 오르면 높은 대우도 생각하겠다"라는 마인드였다고 하는군요. 요즘 같으면 비공개 익명 커뮤니티에서도 입방아에 올랐을 것 같습니다만, 오카모토 요시키 입장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었고, 별 말 없이 넘어갔으니 괜찮은건가 싶기도 하고(?)
p.s
엄밀히 말하자면 엘도라도 게이트 이전에도 분할판매 타이틀은 있었습니다. 엘도라도 게이트하고는 느낌이 좀 다르지만 새턴으로 발매됐었던 반다이의 기동전사 건담 외전 시리즈1,2,3 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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