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리뷰

시그널리스 리뷰

mad wand 2023. 5. 3.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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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의상 경어는 생략합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본문 재가공 금지(유튜브, 블로그, 기타 어떤 형태로든), 링크 금지

 

참고로 플레이는 작년말부터 시작해서, 올해 1월 9일에 클리어를 했습니다. 글 작성 시점과 클리어 시점이 차이나는 이유는, 글을 끝까지 쓸 컨디션이 안되서 미루다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첫인상과 첫인상

 

ACTHUNGㅡ ACTHUNGㅡ

 

시그널리스는 작년말에 출시된 최신 게임이지만, 여러모로 90년대~2000년대 초반의 호러 액션 어드벤처가 떠오르는 게임이다. 스토리, 게임 시스템까지 들어갈 것도 없이 외관만 봐도 어설픈(?) 3d그래픽, 탑뷰(경우에 따라 1인칭 시점으로 변경되기도 하지만), 필름 그레인과 CRT 필터 등, 시각적으로 고전 게임들을 생각나게 한다(시스템적으로는 고정 세이브 포인트, 인벤토리의 제한 등을 꼽을 수 있고).

 

....어찌보면 '그렇게 클래식이 좋으면 클래식을 즐기면 되는 것을, 지금에 와서 비쥬얼부터 구린 게임을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사실 나는 그런 의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정확히 3년 전, 시그널리스의 트레일러 딱 하나만 보고, 여태까지 출시일만 기다렸기 때문이다.

 

블레임이 떠오르는 게임, Signalis (tistory.com)

 

블레임이 떠오르는 게임, Signalis

미스테리, 탐험, 액션, 퍼즐 공식 한국어를 지원하며 발매일은 미정이라고 합니다.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262350/SIGNALIS/ SIGNALIS on Steam A classic survival horror experience with a unique aesthetic, full of melan

intensity.tistory.com

 

따라서 지금에 와서 '굳이 올드 스쿨 액션 어드벤처를 할 필요가 있는지' 등의 의문을 갖고 있는 분이 있다면, 직접적으로 들려줄 말이 없다는 것을 미리 고지하겠다. 이성적인 논리가 없는(?) 사람한테 이성적인 대답을 바라는건 서로 피곤한 일이다. 이어지는 글은 내가 시그널리스를 플레이하면서, 클리어하고서 느꼈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 기반해 작성되었다.

 

 

 

 

 

 

 

첫 트레일러를 봤을 때는 오매불망 출시일을 기다렸던 게임이건만, 직접 마주한 시그널리스의 첫인상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게임 초반부에 필드를 탐색하면서 아이템을 줍다보면 금새 인벤토리가 꽉 찼고, 어쩔 수 없이 창고가 있는 세이브 룸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는 플레이타임 내내 수반되는 필연적인 과정이었으며(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그 정도가 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게임 시스템상 이미 처치했던 적들이 하나둘씩 되살아나는 광경을 봐야했기 때문이다.

 

시그널리스에서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무기와 탄약은 유한하며, 적을 죽인다고 해서 아이템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하물며 레벨업이 있는 게임도 아니다. 한정된 자원을 소모해서 적을 죽여도 물질적 보상이 전무하니, 전투의 가치가 거의 없다는 뜻이고, 그런 부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특정 아이템을 소모해서 적을 완전히 죽일 수는 있지만, 그 아이템 또한 한정적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전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한시적으로 특정 지역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에, 보스 파이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투는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전투 뿐만 아니라 번역에서도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이미지들, 음성, 노래, 라디오 등에 걸쳐서 꾸준히 나오는 미번역된 독일어들이 바로 그것이다. 본작 특성상 떡밥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번역문이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다보니 이게 중요 떡밥인지, 로즈엔진식 겉멋인지 알 수가 없어서 혼자서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독일어를 모르는 한국인이 따로 검색을 할 수 밖에(영문판은 어떤가 싶어서 나중에 영어로 된 영상들을 찾아봤지만, 미국인들은 한자, 일본어, 독일어로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서 잠깐 흐뭇해졌었다).

 

 

 

 

 

 

시각, 청각을 자극하는 퍼즐들

 

라디오 주파수를 활용해야 하는 퍼즐

 

자외선을 활용해야 하는 퍼즐

전투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른 요소들을 되짚어봤을때, 게임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인 퍼즐은 꽤 만족스러웠다.

일반적인 퍼즐 게임에서는 디자이너가 플레이어에게 의미불명의 퍼즐을 던져주고, 우리는 거기에 적용된 복잡한 규칙을 파악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규칙을 활용해서 퍼즐을 풀게 되는데, 이것이 일반적인 퍼즐 게임 장르에 통용되는 게임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그널리스의 경우, 그런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본작의 퍼즐들은 열쇠를 넣어둔 금고의 자물쇠이며, 플레이어는 자물쇠 비밀번호를 읽는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필드를 종횡무진 돌아다녀야 한다.

 

여타 퍼즐 게임이 특이하게 생긴 자물쇠를 제자리에서 이리저리 돌려가며 구조를 파악해서 여는 방식이라면, 시그널리스는 수많은 방에 흩뿌려져 있는 비밀번호들을 하나씩 모으고, 읽는 방법을 알아낸 후, 알아낸 번호로 마지막에 자물쇠를 따는 식이다. 엘스터는 한 일이라곤 찢어진 종이들을 한장씩 모아서, 테이프로 적당히 붙였을 뿐인데, 알고보니 아리안느의 단말기 비밀번호였다니(?).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정리하자면, 시그널리스의 퍼즐들은 필드의 오브젝트와 아이템에 숨겨진 단서를 조사-취합하고, 해답을 도출 하는 보물찾기 놀이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그 과정을 일련의 폐지줍기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지루하게 느낄 소지가 있지만, 청각과 시각을 자극·활용하는 장치들 덕택에 나는 끝까지 흥미롭게 즐길 수 있었다.

 

 

 

 

 

 

소리와 음악들

 

 

시그널리스는 클래식 호러 서바이벌을 천명하고 있지만, 시각적으로 공포감을 유발하는 장면은 극히 드물다(개인적으론 무서운 장면이 하나도 없었지만, 저마다 공포 감수성이 다르니 확언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시점의 제약도 있다보니(괴물의 공포스런 외관을 1인칭으로 보여주는 것과 3인칭 탑뷰로 비추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보라) 게임 내에서 무서운 장면을 대문짝만하게 비쳐준다거나, 기괴한 크리쳐를 등장시켜서 공포감을 조성하기보다는 조명, 음악, 연출 등을 활용한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게임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음악들, 폐쇄적이고 협소한 레벨들, 한정적인 광원과 더불어 게임 전반적으로 저조도로 구성된 환경들, 구시대적인 세이브 포인트 시스템, 특정 챕터의 기믹, 이런 요소들로 말미암아 플레이어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 -극히 일부 플레이어는 본작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낄 수도 있겠으나, 무서운걸로 유명한 여타 호러 게임들과는 그 방향성이 많이 다르다고 본다

 

제작진은 상술한 요소들을 조화롭게 엮어,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시그널리스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여담이지만 6칸으로 제한한 인벤토리는 매우X매우X매우 불편하게만 느껴져서, 1회차에 인벤토리 모드를 써서 클리어 했다. ....육벤토리에 담긴 철학을 아시겠어요? 훡휴!

 

물론 누군가에게는 6벤토리 뿐만 아니라 저조도의 조명이나 세이브 포인트 또한 극혐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게임은 이론상으로도 존재할 수 없다.

 

 

 

 

 

 

 

 

 

 

펜로즈의 삼각형, 그 어디도 아닌 곳

 

플롯이 시간순으로만 배열된 스토리는 소비자가 그 전체 구조를 파악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어떤가? 게임의 내러티브가 매우 불친절하다보니 곱씹어보지 않으면 그저 분위기만 잡는 분위기 갓겜(태그 : 분위기 있는)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명확한 시점을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파편화된 플롯들, 정체(작품상 역할까지)를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 플롯 중간 중간에 튀어나오는 이미지와 문자들, 그와 더불어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현실과 환상, 여러 인물들의 시점과 기억이 서로 뒤섞이다보니 정리를 하지 않으면,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흐리멍텅한 스토리 파악을 위해서는 플레이버 텍스트 또한 정리해야 하는데, 지금은 스팀에만 하루에 수십개의 게임이 쏟아지는 시대다. 플레이 하는 내내 시그널리스의 이야기(문자, 이미지 등)에 치이다 보면, 게임을 받아들이기 위해 게임 내외로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과연 본작의 내러티브는 똥인가 된장인가.

찍어 먹기 전에 일단 게임 아이콘을 보자.

 

 

...당장은 이 아이콘과 게임과의 연관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 이미지는 제작진이 겉멋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따로 명칭도 있는데, 바로 펜로즈 삼각형이다.

 

 

출처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펜로즈 삼각형은 시각적으로는 삼각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삼각형이 아니다. 관념상으로만 존재하는 도형인 것이다.

 

의미심장하게도 엘스터와 아리안느가 탔던 우주선의 이름은  Penrose-512호이며, 엘스터와 아리안느에게 적용된 프로그램의 이름이 펜로즈이다.

 

단순하게 제작진이 펜로즈를 좋아해서 그런 이름들을 지어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떡밥 투성이인 본게임 특성상 가볍게 넘기기에는 꺼림직한 감이 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뒤에 이어서 하도록 하고, 일단은 다른 아이템을 살펴보자.

 

 

시에르핀스키의 팸플릿, WELCOME IN 冷 S-23 SIERPINSKI

 

나무위키,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의 성질

 

게임 초반부, 플레이어는 게임의 주배경이 되는 시에르핀스키(렝 행성 내부 시에르핀스키 광산)의 팸플릿을 줍게 되는데, 그 전면부에는 삼각형이 여러개 그려져 있다. 이 삼각형들 또한 게임의 아이콘처럼 따로 명칭이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이다.

 

그 작도 과정은 작품의 내러티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생략하지만(사실 모름ㅎ),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은 무수히 많은 정삼각형으로 구성된 프랙탈 구조라는 것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펜로즈 타일. 게임 내에서 펜로즈 타일의 등장여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또한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처럼 일정한 형태의 도형들이 무한히 반복되는 구조다.

 

 

시그널리스의 엔딩을 본 후, 이야기를 짜맞추다보면 자꾸 어딘가에 나있는 구멍들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물론 몇가지 명확한 사실들도 있는데, 그건 바로 아리안느는 엘스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수많은 엘스터들이 아리안느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사이클을 반복해왔다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튜토리얼 시점부터 환상과 현실이 헷갈렸지만(아이템을 조사했을 뿐인데 생뚱맞은 공간으로 이동하는 걸 보고 이게 꿈인건지, 있어보이는 연출인건지, 엘스터가 정신병자인건지 헷갈렸다), 게임 중반부 채굴지~그 어디도 아닌 곳 이후로는 이전보다 더더욱 초현실적인 환경을 마주하게 되었고, 안그래도 어지러웠던 플롯들 또한 한층 더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왜 이렇게 현실이 뒤죽박죽이 되었는지 추측할 수 있는 떡밥들이 나오는데, 아마도 생체공명 능력자인 아리안느가 그 원인으로 추정된다. 특정 시점에서 그녀는 시에르핀스키 광산 심부에 있는 미지의 존재와 어떤식으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붕괴된 것이다.

 

언제 그런 현상이 발생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지만, 직접적으로 게임 중반부에 현실(인간의 영역)과 환상(초월적인 존재들의 영역)의 경계를 구분짓는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매체에서 접하게 되는 일반적인 토리이 모양과는 다른데, 이는 신메이 토리이와 매우 유사하다

위 스샷에 엘스터가 서있는 건축물은 일본의 토리이와 그 형상이 매우 비슷하게 보인다. 다만 일반적으로 접하게 되는 토리이와는 그 형태가 조금 다른데, 신메이 토리이(직선형의)와 묘진 토리이(곡선이 가미된)의 차이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토리이는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 짓는 대문인데, 이 장면에서 애들러는 대놓고 경계를 언급한다. 토리이의 상징성, 시에르핀스키 광산 심부에 있는 미지의 존재, 각종 이상 현상들을 연관지어 생각하면 자연스레 저 경계 너머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고 초월적인 존재들이 다스리고 있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의미심장한 부분들이 있는데 토리이의 한자는 새가 머무르는 곳을 뜻한다는 것, 그리고 관념적으로 신의 영역와 인간의 영역 그 경계를 구분짓는 관문이라는 것이다. 마침 엘스터는 독일어로 까치를 뜻하며, 알다시피 엘스터는 이 챕터를 기점으로 그 경계를 넘게 된다.

 

다시 말해 여기서부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구분짓는 건 완전히 무의미한 일이 되버리는 것이다.

현실이면서 환상이고,환상이면서 현실인 세계, 플레이어가 뛰어다니는 공간은 바로 그런 곳이다.

 

 

 

시그널리스는 작품 내내 가득한 상징과 은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 때문에 남미문학의 마술적 리얼리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며, 제작진은 데이빗 린치, 안누 히데아키의 에반게리온(물론 나는 일반인이라 신지가 아스카를 자위도구로 쓰는 편이 수록된 공식 코믹스 한권과 5초짜리 영상 오메데토 신지쿤 짝짝짝ㅡ 밖에 본 게 없다보니, 열거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어떤 부분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바이오 하자드, 러브 크래프트 등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본문단의 처음에서 시작된 질문에는 아직까지 답을 하지 않고, 빙빙 도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어쩔 수 없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차례다.

 

과연 이 게임의 내러티브는 똥인가 된장인가.

전체적인 구조, 반복되는 엘스터의 사이클, 여러 도형과 상징들이 구체적으로 작품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다.

 

시에르핀스키 삼각형, 펜로즈의 삼각형... 앞서 말했듯이 펜로즈의 삼각형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며,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은 무한히 반복 확장되지만 그 면적은 결국 0, 아무 것도 아닌 0이다.

 

게임 내에서 매우 빈번하게 보게 되는 시에르핀스키 삼각형

 

시그널리스의 내러티브는 개념적인 은유로 빚어져 있다. 수많은 엘스터(플레이어)는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을 구성하는 펜로즈의 삼각형이고, 무한히 반복되는 내러티브는 시에르핀스키 삼각형과 같다(엄밀히 따지자면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은 정삼각형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펜로즈의 삼각형으로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3가지 노멀 엔딩-기억, 맹세, 결별은 결국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처럼 무한하게 반복되는 주기의 일부일 뿐이며, 각각의 결말은 펜로즈의 삼각형처럼 결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허상이다. 이들은 무한히 반복되는 백일몽일 뿐이며, 시그널리스의 끝맺음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허상과도 같은 펜로즈의 삼각형, 무한히 반복되는 시에르핀스키 삼각형, 무수히 쌓여가는 엘스터의 사체들, 무수히 반복되는 사이클

 

 

 

 

 

 

히든 엔딩에 관하여

 

모드를 쓰지 않으면 정신병이 걸릴 것처럼 부족하게 느껴졌던 6칸 인벤토리, 퍼즐을 포함하여 게임에서 강박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숫자 6

 

6의 규칙

6의 규칙을 기억하세요!
소지하는 아이템 수가 6개를 초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유물의 소지는 특권입니다.
호주머니는 비워두고, 가방은 가볍게 다녀야 합니다.

 

히든 엔딩=유물 엔딩은 엘스터가 비석에 백합을 헌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UND IN JENEN TAGEN WERDEN DIE

MENSCHEN DEN TOO SUCHEN UND

NICHT FINDEN"

(파파고로 돌려보면 대충 사람들이 뭔가를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는 뜻)

 

 

모니터 너머로 육각형 형태로 배치된 비석과 제물들이 보이며, 그 비석 중 하나는 엘스터의 것으로 추측된다. 비석들의 중심부에는 형광색 유물(아티팩트=테서랙트)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유물은 대체 무엇일까.

 

데이터 마이닝을 한 레딧 유저가 알아낸 바로는, 히든 엔딩에 등장하는 아티팩트의 ID는 테서랙트로 명명되어 있다고 한다. 테서랙트는 4차원에 존재하는 입방체인데, 3차원에 사는 인간으로서는 전체를 온전하게 볼 수 없는 물건이다. 어찌보면 그 자체로 인간의 인지를 초월한 고차원적인 세계, 고차원적인 존재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물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펜로즈의 삼각형, 그 어디도 아닌 곳에서 상술했듯이 엘스터와 아리안느가 발을 담그고 있는 영역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초월적인 존재들의 영역이다. 마지막 히든 엔딩에 이르러 엘스터는 테서랙트를 손에 넣게 되고, 6번째 제물로 자신을 바침으로써 의식을 완성시킨다.


"ES IST VOLLENDET DAS GEHENIMNIS DIESES GOTTES,

WIE SIE ES VERKUNDIGT HAT IHREN KNECHTEN, DEN PROPHTEN."

(파파고로 돌려보면, 예언자가 말한대로 여신의 하인들이 그 예언을 완성시켰다 정도의 뜻)

 

플레이어는 게임 내내 6의 규칙에 시달렸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도 6이라는 숫자가 나타난다. 

 

여기서 제물 6명=숫자 6은 인간 그 자체, 인간의 불완전함을 상징한다. 스쳐지나가는 독일어로 미루어 보아, 비밀스런 예언은 여섯번째 제물을 바침으로써 완성되고, 그 다음 숫자 7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7번째 인물(가운데에 있는 아리안느의 관과 테서랙트) 부활이다.

뜬금없이 왜 6이 아니라 7인지 의아할 수 있는데, 숫자 7은 성경의 완전수, 안식(일주일의 마지막 날에 쉬는 것을 떠올려보자), 계시의 완성, 행운 등 일반적으로 매우 좋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숫자다. 

 

결국 엘스터의 숭고한 희생으로 아리안느는 고통에서 해방되며 안식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이야기 끝인지, 아리안느가 어떤 초월적인 존재로 각성하는 결과로 이어지는지 명확히는 알 수 없다.

 

 

 

엘스터는 아리안느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펜로즈호와 시에르핀스키 광산 등을 끝없이 배회한다. 지켜보는 이 하나 없지만, 엘스터는 아리안느를 위해 묵묵히 역경을 헤쳐나가며, 계속해서 목숨을 던진다. 그녀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연인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이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는 엘스터의 자기희생과 헌신. 오로지 아리안느와의 맹세를 지키기 위한 그녀의 여정은 일견 순교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종국에 이르러 그들의 맹세는 지켜지지만, 정작 엘스터는 자신의 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그렇지만 연인에게 돌아왔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건네지 못하고 끝나는 여행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 유물 엔딩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엘스터와 아리안느가 무사히 만나서 함께 춤을 추는 현실이 존재하기를, 부디 바라건대 그녀의 여정의 끝에 행복한 재회가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리안느와 엘스터 모두 웃으면서 만날 수 있는 루프가 어딘가에는... 치치직... ACTHUNGㅡ ACTHUNGㅡ

 

 

 

 

 

 

 

 

 

 

총평

시그널리스는 작년에 했던 게임들 중 가장 재밌게 즐긴 게임은 아니지만,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게임은 절대로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자료

 

구글로 긁다보니 나온건데,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참고로 저는 무교입니다.

 

임마누엘장로교회 / 은혜샘 카페 / 은혜샘 카페 / 어!성경 자료 (imch.or.kr)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의 의미와 상징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의 의미와 상징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의 의미와 상징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숫자들은 그 종류와 용례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요한계시록에 등

www.imch.or.kr

 

레딧발 데이터 마이닝 

(Spoilers) Datamined sprites, textures, models : signalis (reddit.com)

 

r/signalis on Reddit: (Spoilers) Datamined sprites, textures, models

Posted by u/ProjectIcarus001 - 59 votes and 39 comments

www.reddit.com

 

작중 등장하는 한자, 독일어의 영번역

Steam 커뮤니티 :: 가이드 :: Translations of German phrases and Chinese characters (steamcommunity.com)

 

Steam Community :: Guide :: Translations of German phrases and Chinese characters

Translations of the German phrases and Chinese characters we see in the cutscenes and other ingame text. Feel free to point out anything I got wrong or should add....

steamcommun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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