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영화

공감과 감정이입, 미드소마

mad wand 2019. 7. 1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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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아리 에스터 감독의 전작인 유전을 워낙 재밌게 봐서 차기작인 미드 소마를 보러 갔습니다. 다 보고 난 후에 든 느낌은...공포영화를 기대하고 갔는데, 공포영화는 아닌 것 같다는 것, 그리고 유전이 더 재밌었던 것 같네요.

 

영화는 가족을 잃은 여주인공(대니)과 4년 동안 사귄 남친(크리스티안)과 그의 친구들이 여차저차 해서 스웨덴의 하지축제를 즐기면서 겪게되는 일을 보여줍니다. 작중 내내 심리적인 불안감과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이어나가는건 여전하다는 느낌이었지만, 그걸 터트렸을때 유전만큼 엄청난 부분이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영화는 수미상관 구조이며, 영화 내에 나오는 삽화나 인트로의 카드(4장으로 이뤄진)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인트로의 카드가 작품의 기승전결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죠. 그런데 서사가 삽화대로 흘러가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의 기괴한 행동, 특정 상황에서의 연극적인 움직임때문에 이건 너무 비디오 아니냐? 잔혹 동화나 하지제 특집 연극도 아니고 너무 작위적인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다 보고 나니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끔찍하고 공포스런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행동이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비극적이면서 희극적인 장면이 많아요.ㅡ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오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연출적으로 봤을 때는 초반부에 유달리 많이 나오는 거울이 포함된 씬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두명이서 대화를 하는 장면인데도 불구하고, 한명은 정면으로 한명은 거울에 반사된 상을 담아내는데 대화 내용과 더불어서 대화자간의 거리감이나 단절된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전반적으로 전작인 유전보다 일찍 오컬트적인 요소들을 드러내고, 잔인한 장면들도 몇개 있고(머리통이 깨진다거나 신체를 잔혹하게 훼손시킨 장면 등), 잘만든 것 같긴 한데..왜 다보고 난 후에 왜 유전보다 재미가 없었을까...생각해보면 미드 소마는 공감과 감정이입을 중요하게 다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한 대니를 보여주고, 가족을 잃은 상실감에 크리스티안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합니다. 남자친구는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끼면서도 거리를 벌릴려고 하죠. 제3자인 저로서는(관객) 주인공을 심적으로는 이해가 됐지만, 결국 아무 상관없는 타자이고 가상의 이야기기 때문에 대니의 끝도 없는 징징거림에 감정이입을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여주인공이 오열하는 연기를 워낙 잘해서 살짝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무대는 스웨덴의 외딴 마을로 바뀌는데, 여기 있는 마을 사람들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만면에 웃음을 띄우고, 과장된 행동, 마을 사람 중 한명이 감정을 표현하면 나머지 구성원들이 전부 폭풍 감정이입을 합니다. 대니 입장에서는 처음에 착하긴한데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 정도로 느꼈을테지만,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점차 마을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갑니다. '크리스쨩은 내맘도 몰라주고 시밤쾅! ...저저...저놈 저거! 4년 동안 사귄 여친이 난데 난데없이 처음 보는 마을 여자하고 섹스까지 하네? 아? 열받네? 너무 열받아서 눈물이 나오네? 그런데 여기 사람들(펠레)은 내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울면 같이 울어주고, 새로운 가족이라고까지 해주네?' 여기서 대니는 완전히 뿅가버립니다. 극의 마지막에 가서는 처음에 가족을 잃으면서 느꼈던 상실감도 치유를 하고, 새로운 가족을 얻게 되죠. 

...크리스티안도 여러모로 악질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저는 여주인공의 행동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아서, 감정 이입을 못했고, 그래서 유전보다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 외 짧은 이야기들.

전작인 유전보다는 은유나 상징이 덜한 것 같습니다. 근친상간을 통해 만들어진 신탁자들-종교적인 희생양이고, 그 외 종교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긴 하네요.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결말부에 나오는 땅에 파묻힌 흑인의 다리인데, 뭘 상징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검색해봐도 딱히 나오는게 없어서..이것때문에 내가 교회나 성당을 갈 수는 없는 일이고(?)

피날레의 캠프파이어 구성원은 외부인 4명, 내부인 4명(친구 2명, 현지에서 만난 외부인 2명), 오월의 여왕이 선택한 1명(크리스티안)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사이비는 노답.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울다가 웃는 연기가 대박. 

플로렌스 퓨는 참 작고 단단하게 생겼습니다. 무도회에서 1등을 차지한건 어찌보면 당연한 부분. 스웨덴 사람들과 골격부터가 달랐죠. 장군형 골격에 다들 튕겨져 나가는게 인상적이었어요.

후반부의 섹스신을 보면서 유전 마지막 부분의 할매할배들의 나체가 떠올라서 웃겼습니다. 감덕님이 좀 이런걸 좋아하는듯? 폴더에 노인야동이 있나 뒤져봐야 됩니다.

윌 폴터(마크)는 내가 본 영화마다 틱틱거리면서 할말 다하는 역할로만 나오는데(그러면서 어딘가 멍청함)...맘에 듭니다.

-아마 나무에 오줌을 싸지 않았다면  크리스티안 대신 씨를 뿌리는 역할로 선택되었을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도 캠프파이어의 마지막 제물로 선택되는건 크리스티안이었을 것 같아서 웃깁니다. 

 

혹시 미드소마를 애인이 아닌 이성친구나 가족과 볼 생각이라면 당장 취소하고 토이스토리4나 다른 영화를 예매하는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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